최근 직장 내에서 ‘조용한 퇴사자(quiet quitter)’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회사의 조용한 퇴사자들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실질적으로 회사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조직을 벗어나 있는 직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업무를 수행하지만, 실제로는 퇴사를 염두에 두고 조용히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기업 전체의 운영과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조직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조용한 퇴사란 무엇인가: 용어의 의미와 배경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용어는 2022년 미국에서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퇴사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않고도, 정해진 업무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소극적 반응’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국내에서는 조금 다르게 변형되어, ‘이직을 준비 중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직장에 남아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후자의 맥락, 즉 실제 퇴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조직 내에서는 조용히 움직이는 이직 준비자들을 중심으로 다루겠습니다.
국내외 다양한 설문조사에서도 조용한 퇴사 현상의 확산이 포착됩니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 ‘갤럽(Gallup)’이 2023년 실시한 직장인 대상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59%가 "업무에 최소한의 노력만 들이며 더 이상 회사에 헌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됩니다. 잡코리아와 인크루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4년 상반기 직장인 설문조사에서는 약 45.8%가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조용히 이직을 준비 중”이라고 응답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조용한 퇴사는 단순히 개인의 성향이나 일시적인 감정 문제가 아닌, 업무 만족도, 조직문화, 승진 기회, 워라밸(Work-Life Balance) 등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왜 조용히 떠나는가: 이직 준비자의 심리와 동기
그렇다면 왜 많은 직장인들이 공개적인 퇴사나 이직보다 ‘조용한 준비’를 선택하는 것일까요?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조직 내 불신, 그리고 개인의 경력 보호 심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직 실패에 대한 두려움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직장인의 약 60%는 이직 의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로 “현재보다 나은 직장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재직자의 경우, 이직 후의 조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공식적으로 퇴사 선언을 하기보다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이직을 실행하려는 경향이 큽니다.
조직 내 인사 시스템에 대한 불신
또한 ‘성과 중심의 보상’이나 ‘공정한 승진 기회’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경우, 직원들은 더 이상 조직에 기대를 걸지 않고 조용히 이직을 준비합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일부 기업의 내부 평가 시스템이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면서, 신뢰를 잃은 직원들은 자기 경력의 주도권을 외부에서 찾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조직문화에 대한 피로감
팀워크 중심의 문화가 강조되는 한국 기업 환경에서, 집단적 동조 압박에 피로감을 느끼는 직장인도 많습니다. 업무 외 회식, 단체 채팅방, 오프라인 모임 등에 부담을 느낀다는 조사도 다수 존재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피로감은 결국 '겉으로는 순응하지만 속으로는 떠날 준비를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낳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조직 차원의 인식과 실천
조용한 퇴사자들이 많아지면 조직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인력공백보다 장기적인 조직 신뢰의 붕괴를 더 우려해야 합니다. 특히, 핵심 인재들이 이런 조용한 방식으로 조직을 이탈할 경우, 외부적으로는 조직이 평온해 보일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혁신과 성장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구축
직원들이 언제든지 조직과 자신의 경력 계획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익명성이 보장된 내부 피드백 시스템이나, 사내 커리어 코치 제도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직원의 이직 욕구를 억제하기보다, 그것을 경력 전환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관리자 교육과 리더십 역량 강화
중간관리자들은 조직 내에서 실질적인 소통의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관리자 역시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부하직원의 이직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때론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은 관리자에게 정서적 공감 능력과 소통 역량을 높이는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조직 내 ‘조용한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소속감’ 회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단순히 ‘일하러 오는 곳’이 아닌, 가치와 목적을 공유할 수 있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방적인 기업의 목표 전달이 아닌, 직원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되는 구조, 즉 참여 기반의 조직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조용한 퇴사는 단순히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라, 현대 직장인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과 현실적 고민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직원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조직 전체의 문화와 시스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소속감’과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조직만이, 조용한 퇴사자들을 진심으로 붙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